(5-下-4) 「孟子(맹자)」 제5萬章(만장下)편 4장

(5-下-4) 「孟子(맹자)」 제5萬章(만장下)편 4장

萬章이 問曰敢問交際는 何心也잇고 孟子 曰恭也니라曰卻之卻之爲不恭은 何哉잇고 曰尊者賜之어든 曰其所取之者義乎아 不義乎아 而後受之라 以是爲不恭이니 故로 弗卻也니라曰請無以辭卻之오 以心卻之曰其取諸民之不義也而以他辭로 無受 不可乎잇가 曰其交也以道요 其接也以禮면 斯는 孔子도 受之矣시니라萬章이 曰今有禦人於國門之外者 其交也 以道요 其餽也以禮면 斯可受禦與잇가 曰不可하니 康誥에 曰殺越人于貨하여 閔不畏死를 凡民이 罔不譈라하니 是는 不待敎而誅者也니 殷受夏周受殷은 所不辭也요 於今에 爲烈은 如之何其受之리오曰今之諸侯 取之於民也 猶禦也어늘 苟善其禮際矣면 斯는 君子도 受之라하시니 敢問何說也니잇고 曰子 以爲有王者作인댄 將比今之諸侯而誅之乎아 其敎之不改而後에 誅之乎아 夫謂非其有而取之者를 盜也는 充類至義之盡也라 孔子之仕於魯也에 魯人이 獵較이어늘 孔子 亦獵較하시니 獵較도 猶可온 而況受其賜乎에야曰然則孔子之仕也는 非事道與잇가 曰事道也시니라 事道어시니 奚獵較也잇고 曰孔子 先簿正祭器하사 不以四方之食으로 供簿正하시니라 曰奚不去也시니잇고 曰爲之兆也시니 兆 足以行矣而不行而後에 去하시니 是以로 未嘗有所終三年淹也시니라 孔子 有見行可之仕하시며 有際可之仕하시며 有公養之仕하시니於季桓子엔 見行可之仕也요 於衛靈公엔 際可之仕也요 於衛孝公엔 公養之仕也니라 ---------------------------------------- * 卻之卻之(卻 물리칠 각, 却의 本字) : 받지 않는다는 뜻으로 두 번 거듭 쓴 이유는 固辭(굳이 사양한다)의 뜻을 나타낸 것으로 보아야 한다 『논어』 태백편 제1장에서 泰伯이 ‘끝내 천하를 사양하였다 ’는 뜻으로 “三以天下讓”이라고 쓴 데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끝내 사양(終辭)할 때는 세 번을 사양하여 결심이 이미 굳어 돌이키지 않는다는 나타내고, 固辭할 경우 두 번 사양하고, 예의상 사양(禮讓)할 경우는 한 번만 사양한다 * 朱子는 ‘其交也 以道’는 공손추하편 제3장의 ‘餽贐’과 ‘聞戒’, 고자하편 제14장의 ‘周其飢餓’에 해당하고, ‘其接也 以禮’는 ‘辭命과 恭敬之節’이고, ‘孔子受之’는 陽貨의 찐 돼지를 받은 것과 같은 종류라고 해석했다 * 禦人 : 趙岐는 ‘병기를 들고 사람을 막고서 재물을 빼앗는 것(以兵禦人而奪之貨)’이라고 했다 * 康誥에 曰殺越人于貨하여 閔不畏死를 凡民이 罔不譈라 : 康誥는 『書經』 周書의 편명으로 현재 전해지는 글은 “凡民이 自得罪하여 寇攘姦宄하며 殺越人于貨하여 暋不畏死를 罔弗憝니라(무릇 백성이 스스로 죄를 얻어 약탈하고 겁탈하며 사람을 재물에 죽이고 쓰러뜨려 완강히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를 미워하지 않는 이가 없느니라) ”로 되어있다 곧 閔(근심할 민)은 ‘暋(강할 민)’으로, 譈(원망할 대)는 ‘憝(미워할 대)’로 되어있다 *‘殷受夏요 周受殷은 所不辭也니 於今에 爲烈’의 문장을 주자는 “말뜻이 차례가 없으니, 이씨(李郁, 北宋)가 ‘이는 반드시 이어지는 글이나 혹 빠진 글이 있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 가깝거니와, 내가 생각하건대 그 다만 군더더기 글자가 될 뿐이라 그러나 가히 상고하지 못하니 우선 빼놓는 것이 가하니라(商受至爲烈十四字는 語意不倫하니 李氏以爲此必有繼簡或闕文者 近之어니와 而愚意其直爲衍字耳라 然이나 不可考하니 姑闕之 可也니라) ”고 했다 혹자는 이를 앞 문장의 ‘不待敎而誅者也’와 더불어 법의 내력으로 보고, ‘은나라는 그 법을 하나라에서 이어받았고, 주나라는 은나라에서 이어받아 그 법의 시행을 그만두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도 그 법은 뚜렷이 살아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문맥상 하나라의 폭군 걸이나 은나라의 폭군 주가 포악한 정치를 일삼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린다면 곧 그것은 백성을 죽여 그 재물을 빼앗는 것이기에 단순한 도적이 아닌 御人에 해당한다 그러하기에 ‘탕임금이 하나라의 걸을 쳐서 은나라를 세우고, 무왕이 은나라의 주를 쳐서 주나라를 세운 것은 더 이상 사양할 수 없는 일이고, 지금도 걸주와 같이 포악한 정치를 하는 인군이 있다면 바로 어진 인군이 나타나 바로잡을 것이며 그 뜻은 지금도 분명히 살아있다’라는 내용으로 파악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有禦人於國門之外者’는 곧 나라를 지킨다는 인군을 빗댄 은유적 표현으로 볼 때 더욱 그러하며, 다음 문장과의 관계에서 볼 때 더욱 그 뜻을 분명히 하여 강조하는 대목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주역』의 澤火革괘에서 ‘天地革而四時成하며 湯武革命하여 順乎天而應乎人이라(천지가 바꾸어 사시가 이루어지며, 탕과 무가 명을 바꾸어 하늘에 순종하고 백성에게 응함이라) ’는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所不辭也’는 때가 이르렀다는 天命을 더 이상 사양할 수 없음을 뜻하는 글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아래 ‘充類至義之盡’의 도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포악한 禦人에 해당한다 제4장에서 말하는 교제와 선물의 주고받음은 개인 간의 주고받음을 넘어 크게 나아가면 국가를 새롭게 일으킨다는 내용이기에 ‘殷受夏周受殷所不辭也於今爲烈’의 문장이야말로 맹자가 말하고자 하는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빼놓아도 괜찮은 문장이 아니라, 『맹자』 앞뒤의 문맥은 물론 전체의 맥락을 놓고 볼 때 잘 음미해야 할 대목이라고 본다 * 夫謂非其有而取之者를 盜也는 充類至義之盡也라 : 여기서 盜는 앞의 禦보다는 낮은 단계로, 禦가 사람을 죽여 재물을 뺏는 것이라면 盜는 소유해서는 아니 되는 것을 취하는 자로, 위정자가 세금을 거두는 것은 마땅한 데 지나치게 거둬 사사롭게 취하는 것을 도둑에 비교했다 그런 도둑과 같은 위정자를 비아냥거려 ‘종류별로 가득 채워서(充類) 義를 끝까지(至義) 다한다 ’고 했다 * 獵較(사냥할 렵, 겨룰 각) : 趙岐는 “사냥함에 서로 겨루어서 빼앗은 금수로써 제사한다(田獵相較 奪禽獸以祭) ”고 했고, 張橫渠는 “사냥하여 잡은 것의 많고 적음을 비교하는 것이라(獵而較所獲之多少也) ”고 했다 아무튼 누가 더 많이 잡는가를 다투는 것이므로 ‘내기사냥’이라고 해석했다 * 先簿正祭器하사 不以四方之食으로 供簿正하시니라 : 徐度는 “먼저 장부와 문서로 그 제기를 바르게 하여 정한 수를 두어 사방에서 계속 대기 어려운 물건들로 채우지 못하게 했으니, 무릇 그릇은 떳떳한 수가 있고 채움에 떳떳한 물품이 있으면 그 근본이 바루어지니라 저 내기사냥은 장차 오래하면 저절로 없어질 것이라(先以簿書로 正其祭器하여 使有定數而不以四方難繼之物로 實之하니 夫器有常數하고 實有常品이면 則其本이 正矣라 彼獵較者 將久而自廢矣라) ”고 했다 * ‘見行可’는 그 도를 가히 행할 만하다는 것이고(見其道之可行也), ‘際可’는 만남에 예로써 하는 것이고(接遇以禮也), ‘公養’은 군주가 어진 이를 기르는 예를 말한다(養賢之禮也) * 季桓子 : 魯나라의 卿인 季孫斯이다 공자가 이때에 定公에게 벼슬했음에도 맹자가 계환자라고 한 까닭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당시에 계씨가 나라의 권력을 쥐고 있었고, 정공 또한 스스로가 군주를 맡고 있었으나 일어나지 못했다 공자가 노나라를 도운 것은 다 계환자로 말미암은 것이고, 계환자가 제나라의 여악들을 받아들임에 이르러서 공자가 문득 떠나셨다(當時에 季氏執國柄하고 定公亦自做主나 不起라 孔子相魯는 皆由桓子요 及桓子受女樂하여는 孔子便行矣시니라) ” 또한 공자가 삼도성을 무너뜨릴 때 계씨가 원망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계씨가 이때에 배신들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공자의 힘을 빌려서 제거한 것이다(季氏是時에 自不奈那陪臣何故로 假孔子之力하여 以去之라) ”고 하고, “계환자가 임종을 맞이하여 강자에게 ‘중니로 하여금 떠나게 하고 노나라가 끝내 다스려지지 못한 것은 나로 말미암은 까닭이다 공자가 이때에 기회를 잃고 더이상 이룸을 얻지 못했다(桓子臨死謂康子曰使仲尼之去而魯終不治者는 由我故也라 孔子是時也에 失了機會하고 不曾做得成이라) ”고 할 정도로 계환자의 권력이 定公을 앞섰기에 맹자는 계환자를 들어 말한 것이다 * 衛靈公 : 衛侯인 元 * 衛孝公 : 『맹자』 외에는 그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주자는 出公輒이 아닐까하고 추측하는데 아마도 『논어』 자로편 제3장의 正名論에 의탁한 듯하다 하지만 술이편 제14장에 의거할 때 出公輒에게 출사하지 않았으리라고 보이는데 자세히 알 수가 없다 ---------------------------------------------------------------------------------------------------- 앞장에서는 위정자와의 벗함(友)을 다루고 있고, 이 장에서는 위정자와의 교제(交際)를 다루고 있다 앞장에서는 주로 위정자로서 덕 있는 자와 벗 삼아야 함을 말하고(友其德也), 이 장에서는 공손함을 말하고 있다 恭은 周書 洪範편에서 말하는 군주가 갖춰야 할 五事 중 一曰貌의 德이기도 하다 여기서 맹자는 사귐의 공순함을 공자의 辭受進退를 들어 사귐은 도로써 하고 접함은 예로써 해야 함(其交也 以道요 其接也 以禮라)을 설명했다 이 내용에 비춰 등문공 하편 제10장에서 다뤄진 於陵(오릉)의 陳仲子의 辭受進退의 狹隘함을 측량해볼 수 있다 공자는 “도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아니하니 사람이 도를 하면서 사람을 멀리한다면 도라고 할 수 없느니라(子曰道不遠人하니 人之爲道而遠人이면 不可以爲道니라 - 『중용』 제13장) ”고 했다 유학은 세상에 도를 펴는 것이기에 선비이면서 도를 편다고 사람을 멀리한다면 도를 멀리하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공자는 처음의 조짐이 도를 펼 만하면 나아가 최선을 다해 도를 폈고, 더 이상 행해지지 못하면 떠났을 뿐이다 그러했기에 맹자는 “可以仕則仕하며 可以止則止하며 可以久則久하며 可以速則速은 孔子也시다”고 하며 “내 능히 행하지는 못하겠지만 원하는 바라면 공자를 배우는 것이라(吾未能有行焉이어니와 乃所願則學孔子也로라 - 공손추상편 제2장) ”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