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유물 속 독립운동이야기(6) 추강 김지섭 / 안동MBC
2020/12/30 15:41:14 작성자 : 이호영 ◀ANC▶ 한국국학진흥원과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유물 속 독립운동이야기' 6번째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일본 왕궁 앞에 폭탄을 던진 안동 오미 출신의 추강 김지섭 선생에 대해 살펴봅니다 이 호 영 ◀END▶ 1928년 추강 김지섭 선생의 가족은 일본에서 날아온 한 통의 전보를 받습니다 '김지섭이 사망했으니 유품을 찾아가라'는 치바현 형무소에서 날아온 통지서였습니다 추강 김지섭은 1924년 일본 도쿄 왕궁 앞 이중교란 다리에 폭탄을 투척한 후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1927년 20년형으로 감형됐습니다 하지만 선생은 감형 일 년도 되지 않아 의문의 옥사를 당합니다 의열단 특파원으로 임명된 추강은 1924년 도쿄 제국의회에 폭탄을 투척할 계획으로 일본에 잠입했지만 의회가 무기 연기됐다는 사실을 알고 대신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진 겁니다 ◀INT▶한준호 박사/경북독립운동기념관 '추강 김지섭 선생은 우리나라 독립운동 중 의열투쟁의 역사를 장식한 분입니다 선생의 1924년 이중교 의거는 관동대지진을 학살당한 한인동포에 대한 응징이자 한국 침략과 식민통치에 대하여 일왕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 당시 이 같은 사실은 곧바로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진 사건을 은폐하려 한 일제는 신문에도 실리지 않도록 조치했습니다 하지만 풍산 오미리 집안 사람의 당시 일기인 '김정섭 일록'에는 추강이 일본 왕궁에 폭탄을 던진 사건에 대해 들은 내용이 상세히 남아있습니다 ◀INT▶이남옥 박사/한국국학진흥원 "(음력) 12월 26일 '비밀미출신문'이라는 자료의 내용을 봤을 때, 일제가 이중교 폭탄 투척 의거의 상징성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키고 사건 자체를 은폐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안동 풍산읍 오미리에서 태어난 추강 선생은 김응섭 변호사의 서기로 근무하면서 비밀결사 단체인 '조선국권회복단' 등의 영향을 받아 3 1운동 이후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습니다 추강 선생의 일본 왕궁 앞 폭탄 투척은 자신의 생명을 던져 온 인류에게 자유와 정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민족 독립의 대의를 밝히려는 무력 투쟁으로 인류공영의 투철한 목적성을 토대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한국 독립운동사에 뚜렷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MBC뉴스 이호영입니다 (영상 최재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