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아침용]임시정부 100주년 기획4-청주오역소 / 안동MBC
2019/01/28 14:17:24 작성자 : 이호영 ◀ANC▶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기획보도 "민국이 있기까지 그 기록을 살피다" 시간입니다 을사늑약 체결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 지역의 유생들은 을사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립니다 '청참오적소','청주오역소' 등으로 불린 이 상소는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섰던 5명의 역적을 참수하고 올바른 사람을 등용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 호 영 ◀END▶ 풍산류씨 화경당에서 기탁된 석호 류도성 선생의 '청주오역소'상소문입니다 1905년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이 체결됐다는 소식을 들은 석호 선생은 당시 82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백척간두 위기를 바로 잡기 위해 이 상소문을 작성했습니다 (C/G) 상소문에서 그는 고종이 경연을 열어 신하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데다 소인배를 등용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고 질타했습니다 (C/G) 특히 을사오적은 신하로서 본분을 저버리고 간신배가 돼 500년 종사사직宗祀社稷과 3천리 강토 백성을 일본에게 넘겨준 장본인들로 이들을 신속하게 처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INT▶김형수 박사/한국국학진흥원 "을사오적을 죽이라고 한 것은 외적과 맞서기 위해서는 내부의 적부터 처리를 해서 나라 전체가 단합해서 외적과 맞서야 한다는 그런 의지를 강력히 표명한 것입니다 " 석호 선생은 이와 함께 모든 국민이 단결해야하고 군주는 시련을 참고 견디며 굳세 마음을 가져야 비로소 이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INT▶김순석 박사/한국국학진흥원 "(상소가) 현실적으로 수용되지 못하자 류도성은 직접 의병장으로 참여합니다 류도성의 의병장 참여는 결국 현실 문제에, 일제의 침략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선비로서의 강인한 기개를 엿볼 수 있습니다 " 청주오역소와 같은 상소는 당시 각 지역 유생들로부터 빗발쳤으며 특히 척암 김도화, 향산 이만도 선생도 을사오적을 처벌하라는 장문의 상소를 올렸고 향산 선생은 결국 단식순국의 길을 걸었습니다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유생과 관료들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들도 일제히 분기해, 일제와 매국적신을 규탄하는 등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거국적 항일운동으로 확산됩니다 MBC뉴스 이호영입니다